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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물은 빠졌지만 | 삶의 터전은 잠겼다 - 고현동·둔덕면

  • 2026.08.25
  • By 콘텐츠팀
물은 빠졌지만 거제의 피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현동 상권부터 둔덕면 농촌까지,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피해와 복구 현장을 전합니다.

거제, 물은 빠졌지만 | 삶의 터전은 잠겼다 - 고현동·둔덕면

가게 문을 다시 열어도 손님은 돌아오지 않았고,
농촌에서는 집과 논, 도로와 하천까지 무너졌습니다.



▲ 한동식 사장의 신사복 매장 피해 당시 모습

8월 17일 새벽 1시, 거제 고현동에서 신사복 매장을 운영하는 한동식 사장은 재난 문자를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비가 심상치 않았다.

매장에 도착했을 때 물은 이미 입구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급하게 비닐과 박스로 입구를 막았다.

지하주차장도 살폈다. 주민들과 함께 건물 안을 돌며 차주들의 문을 두드리고 차량을 빼라고 외쳤다.

그러나 사람이 막기에는 물의 힘이 너무 셌다.

지하주차장 차단막이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결국 차량 6대가 침수됐다. 매장 안에도 무릎 높이까지 물이 들어왔다.

“물이 무섭게 밀고 들어오는데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상품이라도 건져야겠다 하고 옷을 전부 걷어냈죠.”


▲ 한동식 사장과 침수 피해를 입은 매장 복구 모습

한 사장은 옷을 박스에 담아 높은 곳으로 옮겼다. 덕분에 상품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럼에도 진열장과 매장 시설 일부가 침수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물은 빠졌지만, 상권은 아직 수해 한가운데

엿새 뒤인 8월 23일 오전 다시 찾은 고현동.

물에 잠겼던 냉장고와 집기, 장판과 가구가 길목 곳곳에 쌓여 있었다. 카트에 폐기물을 담아 내놓은 상점도 있었다.

텅 빈 매장 안에는 진흙 자국이 남았다.

‘수해 복구 중 영업 안 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인 가게도 눈에 띄었다.

물은 빠졌지만, 고현동 상권은 여전히 수해 한가운데 있었다.


▲ 8월 23일, 침수 피해 흔적이 남아 있는 고현동 번화가

고현버스터미널 인근 신발가게도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권승태 사장은 부산에서 거제로 출퇴근한다. 피해 당일 새벽에도 부산 집에 있었다.

17일 아침 평소처럼 매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물난리가 지나간 뒤였다.

“아침에 매장에 출근해 보니 이미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진짜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 권승태 사장의 신발가게 피해 당시 모습

밤사이 매장과 창고가 모두 물에 잠겼다.

아래쪽에 진열했던 신발들은 물에 둥둥 떠다니다 입구 쪽으로 밀려왔다. 물을 먹은 진열장과 집기도 뒤틀렸다.

권 사장이 파악한 피해 상품은 약 450점. 상품 피해액만 약 1억 6천만 원에 달했다.

집기 교체와 전기공사 비용은 별도다.

그나마 브랜드 매장이라 본사 차원의 복구 지원과 보험 처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문을 열었다.

문만 열었다.


▲ 고현동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권승태 사장

“오늘은 신발 한 켤레도 못 팔았습니다.
한동안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겠죠.”

주변의 큰 매장들이 아직 문을 열지 못하면서 유동 인구 자체가 크게 줄었다.


▲ 8월 23일 주말에도 유동 인구가 거의 없던 고현동 번화가

“이대로 있다가는 물에 잠겨 죽을 것 같았어요”

고현동은 거제의 대표적인 번화가다.

음식점과 술집, 노래방, 오락시설 등이 밀집해 있고 지하층을 영업장으로 사용하는 건물도 적지 않다.

이번 폭우 때 1층 상가에도 무릎 가까이 물이 찼다. 지하는 속수무책이었다.

계단을 타고 쏟아진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노래방과 주점, 각종 지하 영업장이 통째로 잠겼다.

그중 한 곳이 박보라미 사장이 운영하는 지하 실내스포츠 시설이었다.

17일 새벽 1시 30분쯤, 박 사장은 집에서 CCTV로 매장 상황을 살폈다.

불과 10~15분 전까지만 해도 없던 물이 어느 순간 가게 계단 앞까지 밀려와 있었다.

박 사장은 남편과 급하게 매장으로 달려가 모래주머니로 입구를 막았다.

그러던 중 천장 쪽이 무너지면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다른 쪽에서도 다시 물이 밀려들었다.


▲ 침수 피해를 입은 실내스포츠 시설을 운영하는 박보라미 사장

“도저히 사람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어요.
이대로 있다가는 물에 잠겨 죽을 것 같더라고요.”

“‘이거 안 되겠다. 포기하자.’ 하고 그냥 나왔어요. 아무것도 못 챙겼어요. 그냥 몸만 빠져나왔어요.”

부부는 지하에서 빠져나와 건물 2층으로 몸을 피했다.

밀려드는 물 때문에 건물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새벽 7시 30분쯤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 집에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혼자 남아 있었다.

부모가 매장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자 아이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내내 부모에게 전화했다.


▲ 8월 23일이 되어서야 복구 작업을 시작한 실내스포츠 시설과 밖으로 꺼낸 폐기물

매장 안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찾기 어려웠다.

당구대는 물을 먹었고 카펫은 뜯어내야 했다. 의자와 다트·사격기계 등 전자기기와 선풍기도 대부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지하 매장 특성상 환기도 되지 않으면서 곰팡이까지 피기 시작했다.

피해 직후 바로 복구할 수도 없었다. 전기가 끊겼고 진흙투성이 바닥은 위험했다.

결국 사고 엿새 뒤인 23일이 되어서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침수된 물건을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이날 고현동 현장에는 경남 하동에서 온 대한민국 청실회 하동지구 회원들도 있었다.

굴착기와 양수기, 분무기 등 장비를 싣고 거제에 들어와 전날 장평동 침수지역을 정리한 뒤 고현동으로 이동했다.


▲ 대한민국 청실회 하동지구 정인태 회장

“일주일 이내에 끝날 게 아니더라고요.
아직 손도 못 댄 지하 매장이 많습니다.”

피해 1,303건, 침수 차량 1,700대

고현동에서 확인한 피해는 거제 전체 피해의 일부였다.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거제에는 누적 968.1㎜의 비가 내렸다.

17일에는 6시간 동안 509.9㎜가 쏟아졌고, 한 시간 최대 강수량은 124.5㎜에 달했다.

거제시가 21일 오전까지 집계한 피해는 공공시설 132건, 주택·상가·농경지 등 사유시설 946건 등 모두 1,078건이었다.

잠정 피해액만 약 270억 원이었다.

신고는 그 뒤에도 계속됐다.

경남도의 22일 오후 8시 기준 집계에서는 거제 피해가 1,303건으로 늘었다.

거제시는 23일 침수 차량도 1,700대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했다.

17일부터 삼도로얄맨션과 대피소, 거제면과 둔덕면 등 피해 현장을 돌아본 이동환 피스윈즈코리아 사무국장은 행정 통계에 잡힌 것보다 실제 피해가 더 넓을 수 있다고 봤다.

“행정이 파악한 숫자와 실제 현장 사이에는
분명 간격이 있어요.”

“아직 신고되지 않은 침수 가구나 상가도 많습니다. 지금은 신고된 피해만 볼 게 아니라 현장을 더 촘촘하게 살펴 실제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지원이 어디에 필요한지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집도 논도 밭도 잠겨버린 농촌 마을

23일 오후, 고현동 상권을 벗어나 둔덕면으로 향했다.

면 단위 농촌 지역에 들어서자 수해의 모습은 다시 달라졌다.

산에서 떠내려온 나무들이 도로변에 걸려 있었다. 산비탈 흙이 쓸려 내려간 곳도 보였다.

도로 한쪽에는 ‘긴급 통행금지, 우회하세요’라는 입간판이 섰다.

어떤 도로는 아스팔트 아래 흙이 통째로 빠져나가 구멍이 뚫렸다.


▲ 8월 23일, 복구가 끝나지 않은 거제 면 단위 농촌 지역

하천 피해도 컸다.

큰 돌과 콘크리트 조각, 나무가 뒤엉켜 있었다. 가드레일은 휘었고 전신주는 비스듬히 기울었다.

논에도 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벼가 한 방향으로 완전히 쓰러진 곳이 있는가 하면, 논 가운데까지 자갈과 나뭇가지가 밀려든 곳도 있었다.

거제둔덕우체국 앞에는 ‘침수피해로 인한 업무중지’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고현동에서는 매장과 영업 기반이 무너졌다면, 농촌에서는 집과 상점, 논과 도로, 하천과 생활 기반 시설이 함께 망가졌다.

정부가 확인한 거제 하천 피해만 고현천 등 11개 하천 27곳에 이른다.


▲ 토사와 폐기물, 쓰러진 농작물이 남아 있는 농촌 지역 피해 현장

100가구 중 80가구 가까이가 잠겼다

둔덕면 하둔리 피해도 컸다.

17일 새벽 1~2시 사이 산에서 내려온 빗물과 하천에서 넘친 물이 마을을 덮쳤다.

주민들은 몸만 겨우 피했다.

폭우가 지나간 뒤에도 골목에는 진흙과 토사가 남았다.

물에 젖은 장롱과 침대, 냉장고 같은 살림살이가 집 앞에 쌓였다.

굴착기가 폐기물을 걷어내고 외부 자원봉사자들도 마을에 들어왔다. 세탁구호차량도 가동됐다.

하지만 피해를 본 집이 워낙 많았다.

사람 손으로 직접 들어내고 닦아야 할 살림살이가 골목마다 남아 있었다.

김용언 하둔리 이장은 마을 약 100가구 가운데 80가구 가까이가 침수됐다고 말했다.


▲ 침수 피해를 입은 거제둔덕우체국과 하둔리 상점

“피해가 워낙 커서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봉사자들이 찾아와 주고, 멀리서까지 와서 같이 치워주니까 정말 고맙죠. 힘든 상황이지만 그런 분들을 보면서 사람 사는 정이 아직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은 빠졌지만, 복구는 이제부터

하둔리의 복구는 진흙과 폐기물을 치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집에서 다시 밥을 해 먹고, 젖은 살림을 다시 채우고, 벽과 바닥을 고쳐 생활을 되찾아야 한다.

물은 빠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물이 지나간 자리를 다시 생활의 자리로 만드는 데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는 8월 21일 거제시 전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했다.

이에 따라 복구 과정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 일부에 국비가 추가 지원되고, 피해 주민들에게 재난지원금과 각종 세금·공공요금 관련 지원도 이뤄진다.

그러나 모든 피해가 행정 지원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원에는 기준과 절차가 있고, 그사이에는 사각지대가 생긴다.

실제로 고현동 현장에서는 침수 피해를 감당하지 못해 아예 문을 닫은 가게도 눈에 띄었다.

재난 현장을 지켜본 이동환 피스윈즈코리아 사무국장은 이런 사각지대를 채우기 위해 민간의 지원과 고향사랑기부를 통한 모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지인으로서 어떤 형태로든 거제를 돕고 싶다면
고향사랑기부제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거제의 다른 현장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산사태가 덮친 삼도로얄맨션 104동. 사고 이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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