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매거진
거제, 물은 빠졌지만 |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 삼도로얄맨션 104동
- 2026.08.25
- By 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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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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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물이 빠진 뒤 |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 삼도로얄맨션 104동
산사태가 덮친 삼도로얄맨션 104동.
사고 일주일 뒤에도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 피해 당시 거제시 옥포동 삼도로얄맨션 104동 모습
8월 17일 새벽 4시 30분, 거제시 옥포동 삼도로얄맨션에 천둥보다 큰 굉음이 울렸다.
건물이 흔들렸다.
잠에서 깬 주민들이 창문을 열었다. 밖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쏟아졌다.
잠시 뒤 “대피하라”는 고함과 함께 주민들이 계단으로 쏟아져 나왔다. 잠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빠져나온 이도 있었다.
아파트 뒤편 경사면에서 무너져 내린 토사가 104동 저층부를 덮쳤다. 1층에 거주하던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주민들은 안내에 따라 처음에는 아파트 아래 성지중학교로 몸을 피했다. 이후 옥포초등학교와 옥포종합사회복지관 등으로 옮겨 다니며 먹고 잤다.
며칠이면 끝날 것 같던 대피 생활은 길어졌다.
다른 동 주민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104동 주민들은 돌아가지 못했다.



▲ 토사가 덮친 삼도로얄맨션 104동 피해 당시 모습
아무것도 못 챙기고 나왔어요
104동 14층에서 15년째 살고 있는 황춘식 씨도 그날 새벽 굉음에 잠에서 깼다.
▲ 삼도로얄맨션 104동 주민 황춘식 씨
아들이 먼저 깼어요.”
“새벽 4시 반쯤이었어요. 제가 먼저 계단으로 1층에 내려가 봤는데 완전히 엉망이었어요. 그러다가 저쪽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황 씨가 달려간 곳에는 한 주민이 얼굴 일부만 보일 정도로 흙에 파묻혀 있었다.
주민 네다섯 명이 가구를 끄집어내고 흙을 퍼냈다. 황 씨도 함께 흙을 팠다. 119에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아 112로 다시 신고했다.
“제가 최초 신고자예요. 아주머니를 꺼내고 나서야 집에 전화해서 아내랑 아이들한테 내려오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못 챙기고 나왔어요.”
그날 아침까지 현장에 머물던 가족은 오전에 성지중학교로 몸을 피했다. 저녁에는 옥포초등학교로 이동했다. 이틀 뒤에는 다시 옥포종합사회복지관으로 옮겼다.
계속 짐을 싸고 옮겨 다니는 거죠.”
황 씨에게 삼도로얄맨션은 단순한 아파트가 아니었다.
스물아홉 살 때 마련한 신혼집이었다. 이곳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아들과 딸을 키웠다.
“집은 오래됐지만 동네가 조용하고 이웃끼리 잘 지냈어요. 그런데 이제 딸이 자꾸 무섭다고 해요. 자다가도 깨고요. 저도 솔직히 다시 들어가라고 하면 무서울 것 같아요.”
아파트 앞에 세워뒀던 차량도 산사태로 크게 파손돼 결국 폐차했다.
그래도 생활은 이어가야 한다. 황 씨는 다시 회사에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일단 지낼 곳을 구했는데 이게 길어지면 원룸이나 투룸이라도 단기로 구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직 없으니까 그게 제일 답답하죠.”
▲ 8월 23일,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인 삼도로얄맨션
아이에게는 집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남았다
104동 12층에 사는 정효진·윤기영 부부는 이 아파트에서 12년을 살았다.
▲ 삼도로얄맨션 주민 정효진·윤기영 부부
새벽 2시쯤부터 재난문자가 계속 왔다. 그러나 이곳에서 10년 넘게 사는 동안 태풍이 와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오래 산 주민들도 태풍 매미 때조차 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새벽 4시 30분쯤 상황이 달라졌다.
건물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갑자기 집이 부르르 떨리면서 쾅쾅 소리가 났어요. 창문을 열어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앞이 안 보였어요. 주방에서는 가스 냄새가 나고 화장실에서는 평소 맡아보지 못했던 흙냄새 같은 게 났어요.”
복도에서는 사람들이 “빨리 피해라”고 외쳤다.
부부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아이 손을 잡고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그 뒤로 친척 집과 대피소, 또 다른 대피소를 옮겨 다녔다. 다시 대피소를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숙소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처음엔 밝게 지냈다.
하지만 며칠 뒤 잠들기 전 부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우리 집 없어지면 어떡하냐.”
정 씨는 그 말을 듣고서야 아이 역시 이번 사고를 견디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이 가족에게도 삼도로얄맨션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동네였다.
“아이 어릴 때가 코로나 시기라 어린이집도 못 보냈거든요. 그때 아파트 엄마들끼리 오늘은 이 집에서 놀고 내일은 저 집에서 놀고 그랬어요. 주민 몇몇 분들이 밭에서 채소도 키워서 서로 나눠 먹기도 했고요.”
“남편이 가끔 이사 가자고 해도 제가 싫다고 했어요. 아파트보다는 마을 같아서 오래오래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말 안전하다는 확인을 받은 다음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그런데 그때까지 어디서 얼마나 오래 지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막막한 거예요.”
숙소 생활이 길어지면서 식사와 빨래 같은 평범했던 일상도 일이 됐다.
끼니마다 음식을 사 먹어야 하고 빨래를 하려면 세탁방을 찾아야 한다. 아이의 개학도 다가오고 있다.
“아이 데리고 모텔을 왔다 갔다 하려니 그것도 걱정이에요. 저는 트라우마가 생겨서 이제는 흙냄새만 맡아도 심장이 두근거려요.”
▲ 8월 23일, 산사태 피해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인 삼도로얄맨션
여섯 식구가 다시 머물 곳
104동 6층의 김은웅 씨는 이곳에서 20년을 살았다.
▲ 삼도로얄맨션 104동 주민 김은웅 씨
“자고 있는데 천둥소리보다 더 큰 굉음이 났어요. 건물이 흔들리더라고요. 조금 있으니까 누가 문을 두드리면서 빨리 대피하라고 했어요.”
김 씨 역시 자던 차림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슬리퍼를 신고 휴대전화 하나만 들었다.
밖으로 내려왔을 때 104동 1·2층은 이미 토사가 밀려들어 아수라장이었다.
김 씨 가족은 모두 여섯 명이다.
아내와 네 자녀가 있다. 큰아이는 고등학교 3학년이고 그 아래로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이 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파트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며칠 뒤 한 시간씩 출입이 허용된 뒤에야 옷가지와 아이들의 학교 가방 정도를 챙겨 나올 수 있었다.
“이 아파트에서 20년 살았어요. 결혼하고 장만한 제 첫 집이었어요. 회사도 바로 근처라 편하게 다녔고 아이들도 여기서 다 키웠어요.”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이제 가족은 대피소를 나와 임시숙소에서 생활해야 한다.
여섯 식구라 방 두 개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취사나 세탁이 어려운 숙박시설에서 언제까지 지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큰아이는 수험생이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인데 지금 이 상황에 무슨 공부가 되겠냐고요.”
가족에게는 두 살 된 반려견 마루도 있다. 새로운 숙소에서 함께 지낼 수 있을지도 아직 알지 못한다.
김 씨는 며칠 동안 가족을 챙기느라 일을 쉬었다.
이제는 다시 출근해야 한다.
“돈을 벌어야 가족이 생활하니까요. 이래저래 걱정이 많습니다.”
▲ 산사태 피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삼도로얄맨션 104동 뒤편과 토사에 깔려 크게 파손된 차량
집은 그대로인데, 돌아갈 수 없다
사고 일주일째인 8월 23일.
104동에서는 굴착기들이 건물 안팎에 쌓인 토사를 퍼내고 있었다.
1·2층 창문과 벽 일부가 뜯겼다. 건물 앞에는 퍼낸 흙과 부서진 집기들이 산처럼 쌓였다.
현장 공사 관계자는 “건물 안팎의 토사를 걷어내는 데만 열흘 안팎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거제시는 긴급 안전점검 결과 토사가 직접 덮친 104동 전체에 구조 안전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무너진 벽면 복구와 파손된 건물 보강도 필요하다.
정밀안전진단에만 최소 2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는 사이 대피소는 일주일 만에 문을 닫았다.
104동 주민들은 급하게 임시숙소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돌아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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